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화이트보스 2016. 2. 29. 11:52


'얼굴 마담' 노릇 안 해… 黨의 생리에 맞출 생각도 없고"

입력 : 2016.02.29 06:05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인터뷰하는 처지에서 김종인(76)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매력은 할 말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캐치볼하듯이 빠르게 말을 주고받았다.

―더민주당을 맡은 지 한 달 됐다. 본인은 실권을 쥔 주인인가, 선거용 얼굴 마담인가?

"내가 '얼굴 마담' 노릇은 안 한다.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당 운영과 공천 문제를 문재인 전 대표와 상의하나?

"상의할 필요도 없지."

―현역 의원 공천 탈락으로 김 대표에 대한 당내 반발과 공격이 개시된 셈인데?

"반발과 부작용을 겁내면 공천 못 하지. 그런 공격에 난 흔들리지 않는다. 다 들고일어나겠다면 선거를 그만두자는 것이지."

―문재인 전 대표가 만들어놓은 공천 혁신안에 대해 '거지 같은 물갈이'라며 직접 공천에 관여하겠다고 했는데, 그쪽 진영에서 방관하겠나?

"말이 혁신이지, 현실과 동떨어진 기계적으로 해놓은 것이다.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내가 바꾸려고 하는데, 막겠다면 헤어질 수밖에 없지."

―안 되면 대표직을 던지고 나올 수 있다는 뜻인가?

"끝까지 부딪치겠다면 내가 어떻게 하겠나. 물론 무책임하게 나오겠다는 것은 아니고, 당(黨)이 비정상적 상황을 맞아 나 같은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나. 그쪽에서는 '왜 저 사람이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는 게 옳다."

김종인 대표는 “안철수는 한때 40% 이상의 지지율 환상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말로만 골백번 '진보 정당'
그건 진보 정당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시절
서민에게 무슨 도움 됐나"

―여기로 오면서 '국민의 눈에 수권(受權) 능력을 갖춘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당이 소위 집권 의욕이 별로 없어 보였다. 집권하려면 정책 목표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 새로워져야 한다. 고정관념에 매여 정체성 타령 하는데, '정체성이 뭐냐? 그걸 가르쳐달라'고 하면 아무도 대답 못 한다."

―공천 칼자루를 쥔 대표 앞에서 말을 못 했던 게 아니었을까?

"내가 입을 봉(封)하는 사람은 아니다. 밤낮 똑같은 노래만 불러왔는데, 분명한 것은 이런 생리에 나를 맞출 수는 없다는 거다."

―당(黨)이 내게 맞춰야 한다?

"뭐 그런 거지.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그런 바뀐 모습으로 국민에게 신뢰를 받겠다는 거다."

―당의 색깔을 바꾸고 있는 것에 대해 '김종인식 문화혁명(文化革命)'이라는데?

"내가 전방을 방문해 '북한 궤멸' 발언을 해 말이 많았다. 소련이 무너지는 과정이나 동·서독 통합 과정을 보면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돈을 쏟아붓는 게 결과가 뻔하다는 것인데."

―'개성공단 중단은 단순한 찬반 문제가 아니다' '햇볕정책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발언도 당의 핵심 세력이 볼 때는 정체성을 흔드는 것인데?

"핵심 세력이 특별한 것 같지도 않고 확실하게 딱 정해진 정체성이 없던데 뭘 그래. 평화 통일 전략적 목표는 같아도 상황 변화에 따라 전술은 달라진다. 햇볕정책이 그 당시에는 맞았을지 모르나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한다. 그러면 바꿔야지."

―문재인 전 대표는 현 시국과 관련해 "전쟁이냐 평화냐"로 대응했는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은 곤란하고."

―정체성 문제에서 당 내부가 잠잠했던 반면, 당 외부의 진보계 원로라는 임동원·백낙청씨 등이 "평화·통일의 시대적 각성을 다하지 못하는 야당"이라는 성명을 냈는데?

"옛날에 사는 분이니까 유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28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기자간담회 영상. /티비더불어민주 유튜브 채널

―이들은 김 대표와 연배가 비슷한데?

"사고(思考)가 다르다. 옛날 사고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으니 도움이 안 된다."

―본인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이 있을 때마다 "특별히 관심 가질 필요는 없다" "심심하니까 글 한번 쓰는 거겠지"라며 쿨하게 대응하는데?

"반응할 필요가 없으니까. 세상은 바뀌는데 정치인들은 한때의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러니 국민의 외면을 받는 거지. 정당이란 세상에 적응해야 존재 가치가 있다."

―새누리당 시절 정강 정책에서 '보수'를 빼자고 해서 시끄러웠는데, 이쪽에서는 '진보'를 빼고 싶은가?

"당시 새누리당이 그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덕을 본 거지(웃음). 이쪽 정강 정책에는 '진보'라는 단어가 없어. 지금 시대가 그런 이념에 사로잡히면 국민이 따라오질 않는다."

―더민주당은 무엇을 내세우려는가?

"실용적 정당이다. 국민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야지, 원론적 얘기만 늘어놓으면 되나."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 차이가 보수·진보 같은 이념이지 않은가?

"경제학자들이 '신자유주의가 옳으니 케인스주의가 맞느니' 하는데, 이는 학회나 강의실에서 싸울 일이다. 현실에선 이것저것 합쳐서 쓰는 것이다."

문재인 흐뭇… 김종인 침묵
客이 와서 黨을 右클릭하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친노
/이태경 기자

"임동원·백낙청의 批判?
옛날에 사는 분이니까
유념할 필요 없어
지금 시대에 맞지 않아"

―더민주당은 소위 진보 정당이 아닌가?

"말로만 골백번 '진보 정당'이라고 해봐야 진보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진보 정부라고 하는데, 그 시절의 경제·사회정책을 보면 진보 정책이 없어. 말로만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면서 실제 무슨 도움이 됐나."

―김 대표의 목표는 총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정권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수권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총선이 끝나도 계속 당을 운영하겠다는 뜻인가?

"총선이 끝난 뒤 '내가 친노(親盧)이니까 한바탕 해보자'며 옛날처럼 서로 찧고 싸우면 남아있을 수 없겠지. 문재인 전 대표가 대권 목표가 있는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당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나."

―문 전 대표에게 차기 정권의 기대를 걸고 있나?

"나는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을 위해서 온 사람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가 솔직하고 성실하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안 된다. 안보 지혜, 글로벌 사회에 대한 인식, 경제 지식, 미래 교육에 대해 완전하지는 않아도 기초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남에게서 듣고서 판단할 줄은 알아야 한다."

―주요 현안마다 문 전 대표와 의견이 충돌하는데?

"만나야 충돌하는 거지. 내가 당을 맡고서는 딱 한 번 만난 것밖에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새누리당 간판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설이 나오는데?

"새누리당 일부 계파가 그런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정당이 뿌리를 갖고 있는데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 유엔 사무총장 경력으로 대권 도전은 무리다. 전형적 직업 외교관이다."

―더민주당의 대선 기반을 만들어주려면 이번에 비례대표로 원내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아직 결정을 안 했다. 필요하다고 내가 판단되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그런 것 아니겠느냐."

―내 관찰로는 김 대표는 권력 의지가 강한 것 같다. 본인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권력이 무슨 필요가 있나."

―필리버스터가 오늘(28일)로 엿새째다. 본인은 애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면서?

"원내 대표단이 그 방식을 제안했다. 우리 당이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법 조항이 인권침해 우려가 있으니 수정해달라는 것이다. 당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고 선거구 획정안도 통과시켜야 하니 어느 시점에서 멈추겠지."

―며칠 전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 대사는 왜 하필 야당 대표를 만나러 왔나?

"나도 왜 왔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전쯤 통보가 왔다. 일반적인 예방으로 알았는데 장황하게 자료를 준비해 와 그런 얘기를 할 줄은 상상을 못 했다. 나도 놀랐다."

추궈훙(오른쪽) 주한 중국 대사가 23일 국회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사드(THAD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반대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일개 대사가 "사드 배치로 양국 관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을 때, 그 자리에서 꾸짖었다면 더민주당의 점수가 올라갔을 텐데?

"내가 정부에 있는 사람이면 그랬겠지만. 중국 인사들을 만나보면 우리에게 무례한 말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조공받던 시절의 사고방식이다."

―이번 총선은 무엇이 쟁점이 될까?

"현 정부의 경제 실패가 쟁점이다. 국민들 삶이 어려워졌고 소상인·중소기업이 다 죽겠다고 하는데 당연히 그걸로 가야겠지."

―박근혜 정부가 3년을 맞았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평가할 게 별로 없다. 평가할 게 있어야 평가하지 않겠나."

―안보·대북 정책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않았나?

"남북한 신뢰 프로세스나 통일 대박을 내세웠는데 어떻게 됐나. 경제 성적표도 역대 정권에서 가장 나쁘다. 국제 경제 여건이 그렇다 쳐도 그걸 시인해야지. 국민에게 솔직하게 말해야지."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대통령 주변에서 상황 인식을 잘못 입력해준 거지. 그러지 않고는 이렇게 오지 않았다. 보좌하는 사람을 어떻게 잘 골라 쓰느냐도 대통령의 책임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12년 12월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 DB

―애초 왜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려고 했나?

"그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좀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 그 주변이 심플한 사람, 이익 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봤다. 앞의 두 가지는 맞았다. 남들에게 신세를 안 졌기에 경제 운용의 틀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걸 내가 잘못 봤다."

―지난 대선이 끝난 뒤 박 대통령이 부르거나 챙겼다면 야당으로 갔을까?

"글쎄, 대통령이 된 뒤로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어쨌든 팔자에 없는 일을 맡게 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싸우는 꼴을 보면서다. 안철수가 튀어 나가고 이쪽도 저쪽도 지리멸렬이고 한국 야당의 장래가 한심스럽게 될 것 같았다. 국민이 선택할 대체 정당이 있어야 하고 야당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새로워져야 하는데,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재인씨가 쳐들어와 사흘간 졸라대서 온 거다."

―애초 안철수의 국민의당에서 영입했다면?

"나는 그쪽에서 오라고 해도 안 갈 사람이니까. 이런 얘기를 하면 흥분하겠지만, 정당은 아무나 몇 사람 모여 되는 게 아니다. 의원 생활 2년밖에 안 된 안철수가 경륜이 있나. 한때 40%가 넘는 지지율에 대한 환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제3당에 대한 기대가 컸다. 국민의당은 왜 지금과 같이 됐을까?

"내각제라면 몰라도 대통령제에서 제3당은 성공 못 한다. 새 정치를 한다고 나갔는데 창당 과정에서 보니 새 정치 냄새가 안 나. 옛날 사람들이 하던 식과 똑같다. 그러면 기대감도 사라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