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의 죽림재
담양군 고서면 소재지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무등산과 맥을 같이하는 향백산(香栢山)이 있고 그 아래 속칭‘잣쟁이’라 불리우는 분향리에 창녕 조씨 동족 마을이 있다.
죽림재는 마을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죽림 조수문(竹林 曺秀文·1426~?)에 의해 건립된 정사(精舍)로써 초기에는 창녕 조씨 문중의 강학 장소로 이용됐으나 후일 서원의 형태를 띄고 후손들에 의해 그 원형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지난 87년 전남도 기념물 제99호로 지정된 죽림재는 강당인 취사당이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팔짝지붕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짝지붕의 조유도의 묘각인 세일재, 정면 1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효자각인 충효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짝지붕의 장서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동재와 서재가 경내에 세워져 있다.
초기 건물은 1592년 임진왜란 때(그러나 정확한 기록은 없음, 이를 뒷받침하 듯 표지판에 기록된‘1592년 임진왜란시 소실’부분을 칼로 긁어 빈 란으로 둠) 귀중한 문적(文籍)과 함께 소실되었고, 1623년 인조 1년에 죽림의 6대 손인 삼청당 조부(三淸堂 曺 簿)에 의해서 중건 되었다.
그후 죽림의 아들인 운곡 호(雲谷 浩)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8년에 문인과 후손에 의해 죽림사(竹林祠)가 건립, 1751년에 죽림재와 같은 위치에 죽림사를 이건 하였다. 1868년 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에 복원돼 현재 4위(죽림 조수문, 운곡 조 호, 삼청당 조 부, 소은 정민하)를 배향하고 있다.
죽림은 학문이 빼어났으며, 효심이 지극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살이에 나가지 않은 선비로 알려져 있다.
그의 학문은 강 호, 김숙자의 학맥을 승계, 점필제·김종직 등과 교유해 학문을 넓혀 당시 재상 김포광이 왕명을 받아‘역학계몽(易學啓蒙)’을 저술할 때에 많은 자문역할을 했다. 훗날 점필제는 죽림을 ‘호남의 진짜 유학자’라고 칭송하기도해 그의 인품과 학식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가문의 기풍 탓인지 이 마을에는 여러 기의 효자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죽림의 저서로는‘성학지남(聖學指南)’‘작불론(作佛論)’이 있으며 박신극(朴新克)은 호남의 유생이 죽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였고, 그 문하로서는 판서 윤달화, 현감 강백령, 교리 조 호 등이 대표적이다.
죽림 조수문은 여말 충신직제학유도(麗末忠臣直提學由道)의 아들이고, 성종조 문신 교리호(成宗朝文臣 校理浩)의 아버지인 만큼 그 당시의 지위를 짐작할 수 있으며, 300년 전 절와 박신극의 행장에 호남유학이 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였으니 비록 죽림의 문집은 전하지 않지만 그 말에 신빙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 죽림재 취사당, 세일재, 정려, 유허비 등을 개별적으로 논하자면 그리 특이한 점은 없다. 그러나 한 문중 선대 명인들의 유적이 이렇게 모아있는 곳은 드물다. 수 백년 내려온 선조유적을 잘 보전·보수하는 후손들의 정성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갈수록 예와 덕이 사라지는 현대사회에서 가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죽림재와 같은 경우는 사실 보기드믄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들어 말끔하게 보수를 하고 연못도 정비했지만, 죽림재 코 밑에 콘크리트와 슬레트 지붕의 축사(畜舍)가 여간 눈에 거슬려온다.
죽림재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어귀에는 ‘환학당’이라는 다소 현대풍의 모정이 객의 시선을 잡는다.
최근 복원된 환학당은 ‘학을 부르는 집’이란 의미를 담고있는 곳으로 선조때 문장 행실이 뛰어난 조여심이 그 주인이란다. 그 옛날 환학당의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석천 임억령, 양곡 소세양, 제봉 고경명, 고봉 기대승, 창주 나무송 등의 시가 전하고 있어 죽림재와 더불어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글/ 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사진·그림/ 박주하 화
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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