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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정자와 누정이 많은 지방의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하다. 그만큼 세상살이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그 진솔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오늘처럼 먼지가 풀풀 날리는 날이면 ‘사람다운 사람’이 더욱 간절 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절(義節)의 고장, 곡성’을 찾는 길은 녹음이 한창 짙푸렀다. 광주를 벗어나 곡성 읍내를 거쳐 얼마나 달렸을까. 전남도내 마을단위 가운데 가장 넓다는 오곡면 오지리, 섬진강으로 흐르는 지천을 가운데 두고 오지 7리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영수정(永守亭)이 순례자를 반겼다.
▲사진(1)=1826년 곡성지역 선비들에 의해 오곡면 오지 7리에 세워진 영수정. 이 정자는 향약(鄕約)을 시행했던 곳으로 오늘날 곡성지역 정신문화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2)=정자 주변에는 점점 사그라져 가는 토담과 아름드리 한 팽나무, 그리고 소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영수정의 오랜 역사를 소리없이 대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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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정자와 누정이 많은 지방의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하다. 그만큼 세상살이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그 진솔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오늘처럼 먼지가 풀풀 날리는 날이면 ‘사람다운 사람’이 더욱 간절 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절(義節)의 고장, 곡성’을 찾는 길은 녹음이 한창 짙푸렀다. 광주를 벗어나 곡성 읍내를 거쳐 얼마나 달렸을까. 전남도내 마을단위 가운데 가장 넓다는 오곡면 오지리, 섬진강으로 흐르는 지천을 가운데 두고 오지 7리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영수정(永守亭)이 순례자를 반겼다.
정자 주변에는 아름드리한 팽나무와 소나무가 영수정의 역사를 말해주는듯 했고, 발아래 깔려 그 흔적을 서서히 잃어가는 흙담이 세월의 덧없음을 소리없이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정자는 1826년 건립돼 향약을 시행 했던 곳으로 곡성 정신문화의 큰 줄기를 형성시킨 모태가 되고 있다.
당시 이곳을 드나들며 지역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선비로는 조 환을 비롯 오장순 유정모 노석언 홍유성 고광신 안제학 유정식 오계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선비들은 이 정자에서‘향약 12조’를 태동 시키고, 마을의 크고작은 일을 주민들의 총의를 거쳐 시행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본을 뿌리 내리게 했다.
그래서 영수정은 시문(詩文)이나 읊었던 여느 정자와는 달리 선비들의 올곧은 평등정신과 대동세상의 단초가 되는 민주주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이 영수정에는 지금도 향약문이 전해오고 있다. 그 내용은 보잘것 없고 간략하지만,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인‘사람으서 행해야 할 도리’를 엄격한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 동약(洞約)에는 가정에 있어서는 효(孝)를 행할 것이며, 나라에 있어서는 충(忠)을 행해 사라져가는 민족의 전통양식을 오늘날까지 계승해오고 있는 것이다.
영수정의 동약은 송나라때 람전여씨(藍田呂氏) 향약과 괘를 같이 하고 있다. 주자(朱子)가 그 제도를 손질하여 한 시대를 성사(盛事) 시켰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퇴계 선생이 온계계약(溫溪契約)을 세워 민족의 양식을 오늘날까지 보듬어 온 것이다.
이같은 선비들의 정신은 정내(亭內)에 걸려있는 액자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함께 배우고 함께사는 이것이 대동단결/ 의관을 갖춘 선비들이 마을 가운데 모여 앉았네/ 소선(蘇仙)이 놀던 적벽같은 곳에 다락을 이루었고/ 사람들에겐 람전여씨(藍田呂氏)의 바람이 있구나/ 이웃마을까지 보고 듣고 감화된 자 많아/ 명예와 이익을 가벼운 기러기털로 알았네/ 관원들은 등임(登臨)하여 아름다운 것만 알아/ 푸른 대나무와 명사십리 금수(錦水) 동쪽이라오 <1862년 5월 하순 곡성군수 달성 서기보(達城 徐箕輔) 짓다>
시문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주변은 참으로 조용했다. 아니, 적막감 마져 감돌았다. 팽나무에 걸터앉은 봄 새들의 지저귐이 봄 빛과 어우러져 세속에 물들어버린 순례자의 가슴을 하염없이 쓸어내리고 있었다.
영수정을 내려오는 돌계단 사이로 몇 촉의 쑥이 얼굴을 내밀어 진한 향을 내뿜었다. 코 끝이 찡했다. 마치 선비들의 올곧은 정신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
글/김선기 기자 kimsg@kjtimes.co.kr 그림·사진=박주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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