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溫故知新

제1話 溫故知新 (30)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태동

화이트보스 2009. 5. 18. 20:05

제1話 溫故知新 (30)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태동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올해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50주년이 되는 해다. 돌이켜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 양국은 굳건한 동맹관계를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나아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해왔다. 그중에서도 처음 연례 한·미 국방각료회담으로 시작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Security Consultative Meeting)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관계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켜온 기구다.

한·미 간에 연례 국방각료회담이 처음 열린 것은 1968년 5월27~28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다. 이 회담의 개최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그해 2월12일이다. 1·21 무장공비 침투 사태와 미 첩보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 한반도에서 일련의 안보위협 사건이 발생한 후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이 파견한 사이런스 R 밴스 특사의 방한을 계기로 열린 한·미 고위회담에서였다.

미국이 북한과의 비밀협상에서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은 제쳐놓은 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에만 집착함으로써 한국에서 대미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존슨 대통령은 밴스를 특사로 파견, 대한(對韓) 군장비 지원 등 일련의 한국 안보를 다짐한 이른바 `밴스 각서'를 수교했다. 이 회담에서 한·미 양국 정부는 한국의 방위와 안보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양국의 국방각료급 연례회담을 갖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의는 그해 4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박정희·존슨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더 구체화됐다. 즉 박정희·존슨 대통령은 한국군 장비 현대화 등 정상회담에서 검토된 사항들을 상세히 토론하기 위해 5월 중 워싱턴에서 제1차 한·미 국방각료회담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5월27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이 회담에서는 주로 한국군 장비 현대화와 미국의 추가 군사원조 1억 달러의 사용 방안 등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이때 양국 국방장관은 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도발행위가 한국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에 중대한 위협을 주며 그러한 행위가 계속될 경우 새로운 전쟁이 유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이같은 사태 평가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 소화기를 제작할 수 있는 군수공장 설치, 대간첩 기구의 편성, 예비군 무장 지원 등에 원칙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자주국방의 길을 터놓았다.
그 뒤로 순탄하게 진행된 한·미 국방각료회담은 닉슨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계획으로 한 차례 격랑을 맞는다.

70년 7월22일 하와이의 태평양지구 미군사령부 캠프 스미스에서 열린 제3차 한·미 국방각료회담은 회담 초반부터 주한미군 감축과 그에 따른 한국군 현대화 문제를 놓고 심각한 협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개 공동성명 채택과 함께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지원, 그리고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군원(軍援) 확대로 끝나곤 했다.

한·미 국방각료회담은 제4차 회의 때부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로 확대 발전됐다. 나는 합참 전략기획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74년 9월23~24일 호놀룰루에서 열린 제7차 연례안보협의회부터 참석했다.

당시 우리 측은 서종철(徐鐘喆)국방부장관이, 미측은 윌리엄 P 클레멘츠 국방차관이 대표로 참석했다. 당시에도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안보 불안심리를 야기할 수 있는 민감한 현안이었기 때문에 우리 측은 주한미군 감축 계획이 없음을 재확인해줄 것을 미측에 요청했고 클레멘츠 차관은 “미합중국 정부가 현 규모의 주한미군을 감축할 계획이 없음을 재확인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까지 34차에 걸쳐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는 이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관계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켜온 핵심기구다.

2003.05.17 정리:김당오마이뉴스기자 dangki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