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話 溫故知新 (33)울진·삼척사태 | |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1968년 11월 울진·삼척 지구에 침투한 북한 124군 부대원은 약 120명으로 그해 1·21사태 당시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인원의 4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은 영락없는 `독 안에 든 쥐'인데도 소탕하기 위해 막대한 병력·장비가 동원되고 또한 70여 명의 군인 및 민간인이 희생됐다는 것은 우리가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지난 2일 밤 경북 울진군 북면의 동해안에 30명 내외로 추정되는 북한 무장공비가 불법 침입, 양민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군경(軍警)과 향토예비군이 이들을 포위, 섬멸작전을 펴고 있다.” 68년 11월5일 합참 대(對)간첩대책본부장 류근창(柳根昌)중장(육사2기·중장 예편)이 처음으로 무장공비 침투 사실을 발표할 때만 해도 적은 30명 내외로 추정됐다. 그러나 대간첩대책본부의 최초 발표와 달리 동해안에 상륙한 무장공비는 120여 명이었고 육군은 이들을 섬멸하기 위해 수백 배의 전투병력을 동원했다. 정부는 울진·삼척 지구에 무장공비가 침투하자 강원도와 경북 북부 일부 지역에 `을종사태'를 선포했다. 을종사태 선포는 무장간첩 행위가 대규모로 이뤄져 경찰병력만으로는 치안 확보가 곤란하다고 판단될 때 군병력을 투입, 장기간 작전하도록 하는 조치로 대통령령 18호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날부터 한국은 사실상 양면전쟁 상태에 들어간 셈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베트남에 병력을 파병, 베트남 전선에서 공산군과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에 또다른 전선을 형성한 것이다. 그것은 베트남식 전략을 한국에서 실시하려는 김일성(金日成)의 노림수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68년 11월30일 수출의 날 치사(致辭)에서 울진 무장공비 사건을 언급하면서 김일성의 실패를 예언했다. “김일성이 가지고 있는 정도의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그들이 노리는 적화통일을 하기에는 벌써 시기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력이 너무 커져버렸고, 대한민국의 국방군이 너무나 강대해졌고,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무장이 너무 단단해졌기 때문입니다.…(중략)… 공산주의를 갖고 경제건설에 성공한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베트남형 게릴라전이 겨울에 가능한지 시험하고 게릴라전의 인프라 구축을 기도한 울진·삼척 침투 또한 박대통령의 예언대로 실패로 끝났다. 작전 초기에는 적의 상륙 지점과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나 두 달 여 동안의 작전 결과 침투한 120여 명 가운데 사살 107명, 생포 7명이었으며 나머지는 겨울 추위로 동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적은 양구·인제를 통해 도주하려고 했으나 길목을 차단한 아군의 `이삭줍기'에 걸려들었다. 적은 며칠씩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쫓기느라 나중에는 걷지도 못할 만큼 지쳐 있었다. 울진·삼척 대간첩작전에서 투철한 주민의 신고정신과 자기 고을의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있어 숨어 있는 적을 이 잡듯 잡아낸 향토예비군의 활약 등은 높이 사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근무지를 무단 이탈해 적의 상륙 지점조차 모른 점(당시 초소장은 군사재판 후 중형으로 다스려짐), 지휘관의 공명심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조급해져 작전 지휘의 실패를 가져온 점 등은 각성하고 어떤 경우에도 부대 운용은 부대 건제(建制)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등은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그때만 해도 한국군은 무전기가 형편없어 1군사령부 작전처 고문관을 미2사단에 보내 미1군단의 최신 중대용 무전기를 빌려와 작전부대에 나눠 주었는데 그중 일부 부대에서는 공비에게 빼앗기고 불태우기도 했다. 지금의 군 구조나 전력에 비춰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2003.05.24 정리:김당오마이뉴스기자 dangkim@empa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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