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溫故知新

제1話 溫故知新 (34)`포커스 레티나' 훈련

화이트보스 2009. 5. 18. 20:07

제1話 溫故知新 (34)`포커스 레티나' 훈련

이재전 예·육군중장·前 전쟁기념사업회장·現 한자교육진흥회장

울진·삼척 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에 대한 대간첩작전은 1968년 11월에 시작, 해를 넘겨 두 달여 동안이나 지속됐다.
69년 3월 어느 날 경기도 여주벌에서는 미 전략타격사령부(戰略打擊司令部)가 주관하는 `포커스 레티나'(Focus Retina:망막초점) 공수공격훈련의 막이 올랐다. 유엔군사령관 찰스 H 본스틸 대장이 한·미 혼성군에 가상의 적군을 분쇄하도록 공격명령을 내린 직후에 펼쳐진 공격의 서곡이었다.

포커스 레티나 훈련은 한·미 양국의 대공방위체제를 점검하고 신속한 기동력과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미 본토와 한국을 잇는 장장 1만3600㎞를 불과 30여 시간에 비행, 완전무장한 2500여 명의 병력을 작전지역에 투입하는 사상 최장최대의 공수훈련이었다. 미국은 당초 이 훈련을 68년 11월에 실시키로 계획했으나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 교섭 때문에 뒤로 미룬 것이다.

이 훈련을 주관한 미 전략타격사령부의 작전 시나리오 골자는 공산국가인 `하타칼'이 민주독립국가인 `차랑'을 침공하자 한국과 미국이 즉각 공수작전을 펴 하타칼을 격퇴한다는 것이다. 미국 측에서는 제82공정사단 병력이 C-141기를 타고 1만3600㎞를 날아와 이 훈련에 참가했다. 한국 측에서는 육군 공수특전단장 정병주(鄭炳宙)준장(육사9기·소장 예편·작고)을 선두로 한 600명의 공수단이 일제히 낙하했다. 당시만 해도 공수단의 존재는 비밀이었다.

이렇게 가상적국의 후방에 낙하한 한·미 연합군은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공격전을 감행했다. 이날 훈련지역에 마련된 관망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3부 요인·각군 참모총장 등 한·미 고위인사 200여 명이 자리잡고 실전을 방불케 한 작전실황을 지켜봤다.

당시 이 훈련에 동원된 병력은 7000여 명에 달했으며 2700대의 차량과 2900t의 장비가 투입됐다. 이같은 병력·장비의 수송을 맡은 수송기만도 77대에 소요경비는 186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이 훈련은 1·21사태, 푸에블로호 나포,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일련의 북한 도발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 아래 실시됐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을 끌었다.

특히 이 훈련은 당시 닉슨 행정부의 `아시아 독자방위론'이 나돌고 일본 오키나와(沖繩) 미군기지 이전설까지 전파된 상황에서 오키나와 기지를 거쳐 많은 작전병력이 공수됨으로써 오키나와 기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포커스 레티나 훈련으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군에 대한 우려가 가셔진 것은 아니었다. 미 워싱턴 포스트지는 당시 포커스 레티나 훈련이 “서로 관련성은 있으나 각기 다른 메시지를 분명히 다른 세 갈래 대상자에게 전하기 위한 다목적의 정치적 제스처였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로 이 작전은 미국이 이처럼 신속한 파병 능력을 완비한 마당에 미군 2개 사단의 한국 주둔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주한미군이 감축되더라도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북 경고 메시지를 의미했다. 세 번째로 이 훈련을 계기로 일본이 오키나와 기지의 중요성을 알게 되기를 기대한 것으로 간주됐다.

군사전문가들도 과거 미국이 서독에서 실시한 `빅 리프트'(大空輸) 훈련 사례를 지적, 포커스 레티나 훈련 이후 주한미군 감축을 예고했다. 미국은 63년 10월 서독에서 1만8000명의 병력이 참가한 빅 리프트 훈련을 폈다. 그리고 이 훈련이 성공적으로 실시된 이후 서독으로부터 미군 1개 사단을 철수시켰다. 미국은 이처럼 주도면밀하게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3.05.26 정리:김당오마이뉴스기자 dangki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