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야기/溫故知新

제1話 溫故知新<72> 비운의 워커 사령관과 워커힐

화이트보스 2009. 5. 18. 20:21
제1話 溫故知新<72> 비운의 워커 사령관과 워커힐

1961년 5월16일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정부는 이듬해 서울 제일의 명당으로 손꼽히던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 기슭에 워커힐 호텔을 준공하게 된다. 그후 77년 미국의 호텔 체인 쉐라톤사와 체인점 계약을 맺고 쉐라톤 워커힐로 이름을 바꾼 이 호텔은 우리나라 호텔산업의 대명사로 많은 사람의 사랑과 선망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위치했던 숲과 강으로 둘러싸인 이 아름다운 호텔이 당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金鍾泌·육사8기·준장 예편)장군의 주도 아래 건립돼 6·25전쟁 당시 의정부 전선을 시찰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즉사한 워커(Walton H Walker·1889∼1950)장군을 기려 이름 붙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워커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패튼 장군 예하의 제20군단장으로 ‘워커 불도그’(Walker bulldog)라는 별명을 가진 적극적인 전술가였다. 공교롭게도 워커 장군이 평생 스승으로 여기던 패튼 장군도 45년 12월21일 유럽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워커 중장은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에 연하는 방어진지를 편성, 새로운 전의를 다지던 50년 12월23일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워커 장군은 그날 의정부 북방의 미 제24사단에 표창장을 수여하고 제24사단에 근무하는 아들 샘 워커 대위의 은성무공훈장 수여식에 참석하던 길이었다.

워커 장군은 본래 탱크부대를 지휘한 기갑병과 출신으로 평소 자동차에 올라타면 전속력으로 모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아들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주기 위해 지프를 타고 8군의 전방지휘소인 서울대(현 한국방송대)를 출발, 의정부 미 제9군단 사령부를 향해 과속으로 달리다가 의정부에서 남하 중인 국군 제6사단의 GMC 트럭과 충돌, 현장에서 즉사한 것이다. 향년 61세였다. 6·25전쟁에서 순직한 워커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미 육군은 당시 최신형 전차인 M - 410 경전차에 ‘워커 불도그’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를 기린 워커힐 건설계획은 61년 5·16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의 아이디어였다. 김부장은 61년 7월 어느 날 “한국에는 적당한 미군 위락시설이 없어 연간 3만여 명의 미군이 일본으로 휴가를 간다”는 멜로이 유엔군사령관의 말을 듣고 미군 위락시설 건립을 결심,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재가를 받아 추진했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 제2국장이던 육사8기 동기생 석정선 등에게 워커힐 건설사업의 책임을 맡겼다. 중앙정보부는 비밀리에 연 2만여 명의 공병병력과 4000여 대의 중장비를 동원, 토목공사를 진행했다. 호텔 건설에 쓰인 최고급 수입자재와 건축비 조달 내역도 비밀이었다.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스칸디나비아제 등 호화판 건축자재들이 무관세 통관 수입, 호텔 건설에 사용됐다.

나중에 중앙정보부의 4대 의혹사건 중 하나가 된 워커힐 사건과 관련해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감찰위원회에 파견 근무할 당시 박정희 의장의 지시로 검열을 나간 적이 있는데 김종필 부장으로부터 중앙정보부가 압수한 거액의 북한 간첩 공작금도 건축비에 포함돼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중앙정보부가 수행한 사업이어서 그런지 검열 결과 수입 자재 일부가 남산의 부장실을 꾸미는 데 사용된 것 말고는 깨끗했다.

서울의 명물 워커힐은 역시 중앙정보부가 세운 국제관광공사에 의해 운영되다가 민영화계획에 따라 72년 12월23일 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안돼 선경그룹의 선경개발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선경그룹(현 SK그룹)의 워커힐 인수 배경에는 고(故) 최종건 회장이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사돈관계여서 권력층의 지원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한국에서 순직한 워커 장군을 기린 아름다운 워커힐의 이면에는 공병대의 희생과 중앙정보부의 ‘검은 돈’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정리=김 당 오마이뉴스 기자 dangkim@empal.com>

200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