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로봇시스템 연구팀
자체개발 로봇 10여종
1㎞ 용접때 0.1㎜ 결함 로봇기술 세계최고 수준
"머지않아 조선업도 첨단 산업으로 분류될 날이 올 것입니다. 삼성중공업의 로봇 기술은 삼성전자에서도 한 수 배우고 갈 만큼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지난달 20일 찾아간 대덕 삼성중공업 선박연구센터 로봇시스템 개발실에서는 여러 로봇에 대한 성능 실험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연구진을 이끄는 김재훈 상무는 '스파이더(거미) 로봇'을 보여줬다. 4개의 다리로 스테인리스판 위를 움직이며 용접하는 이 로봇은 LNG선 저장탱크 제조에 투입되고 있다.
파이프 안을 기어다니며 용접 상태를 살펴보고 이물질을 브러시로 청소하는 로봇, 파이프를 자동정렬해주는 로봇, 페인트칠을 위해 표면을 깨끗이 갈아주는 로봇…. 이 회사의 거제조선소 곳곳을 누비는 이들 로봇은 삼성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만든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회사 조선소에서만 볼 수 있는 10여종의 로봇은 30명의 연구팀이 개발한 '작품'이다. 로봇 도입 덕에 거제조선소의 공정 자동화율은 세계 최고수준인 67%에 달한다.
- ▲ 삼성중공업의 대덕선박연구센터에서 로봇 시스템 연구원들이 자동 용접 로봇 앞에 모였다. 이들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공정 자동화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만든 주인공들이다./대덕=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10억분의 1초 단위로 제어
박영준 수석연구원은 "자동차나 반도체 공장의 로봇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지만 선박은 덩치가 크고 형태도 제각각인데다가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면서 늘 다른 환경에서 작업해야 되기 때문에 자동화가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파이프 검사·청소 로봇을 개발할 때였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 파이프 자체 온도만 섭씨 40도였죠. 직경 50㎝짜리 파이프 속을 30분 정도 기어다녔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박상동 선임연구원)
로봇 도입에 따른 가장 큰 효과는 안전성 확보다. LNG선에는 2㎞에 달하는 LNG 운송 파이프가 들어가는데, 용접을 마치면 파이프 내부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바닷가 땡볕 아래 움직이기조차 힘든 파이프 안에서의 작업은 보통 힘든 게 아니어서 간혹 질식 사고도 났다.
하지만 로봇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작업 효율도 좋아졌다. 스파이더 로봇의 경우 생산성이 기존 방식보다 4배 높고, 1㎞를 용접하면 결함이 0.1㎜ 내외에 그칠 만큼 완벽한 품질을 구현했다. 거제 조선소에서 가동 중인 각종 로봇의 고장률은 연간 0.3%다.
김재훈 상무는 "산업 현장에서 가동 중인 로봇으로는 국내 최고 기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삼성중공업은 10억분의 1초 단위로 제어해 여러 개의 로봇이 한 치 오차 없이 동시에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구조가 복잡하고 형태가 다른 선박의 특수성에 맞춰 다양하고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다가 확보한 기술이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중공업은 로봇을 별도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석·박사 비중, 90% 육박
삼성중공업 로봇 기술의 원천은 우수한 인적 자원. 김 상무는 삼성그룹이 최고 핵심 기술 인력에 부여하는 직책인 '삼성펠로우'에 선임됐다. 삼성중공업 로봇 연구인력 중 석·박사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인간형 로봇 '휴보' 제작에 참여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연구원도 4명 있다. 연구팀은 KAIST와 산학 협력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1990년대 말부터 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며 자체 자동화 로봇을 개발해왔다. 일본의 기술과 중국의 싼 인건비를 이겨내려면 자동화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중공업은 2005년 수주·매출에서 현대중공업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생산 현장에서 쓰이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해당 연구원들은 조선소에 머무는 날이 많다. 이인호 선임연구원은 "조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오후 6시쯤 출근해 다음 날 새벽까지 일하고 귀가한 날이 숱하게 많다"고 말했다.
"유럽이 조선업을 석권하고 있을 때 일본은 리벳(rivet·철판을 연결하는 굵은 못) 공법을 용접 공법으로 바꿔 1위가 됐습니다. 한국 조선업은 로봇을 통해 앞으로 계속 1위를 지켜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