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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강팀] [2] 명품TV의 틀을 잡다

화이트보스 2009. 6. 1. 11:50

[세계최강팀] [2] 명품TV의 틀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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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5.12 06:23 / 수정 : 2009.06.01 03:44

▲ 삼성 TV를 명실상부한 세계 1위로 자리 잡게 만든 크리스털TV 외장개발팀이 제품을 들고 걷고 있다. 왼쪽부터 황한섭·민성기 수석·정진영 사원·이상훈 상무·정현준·이종원 수석이다. 이 상무는“엔지니어의 열정이 히트작을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삼성TV 크리스털 외장팀 '크리스털 TV의 비밀'
차(車)선루프 제작기술 활용해 남들이 못베끼는 '작품'으로 '금형도 세계1위 가능' 증명

2005년 9월, 삼성전자 이상훈 상무(당시 수석연구원)의 입술은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고광택 블랙 TV를 세계 시장에 내놓자, 일본·중국·유럽의 경쟁사들이 거의 똑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 기술로는 차별화된 TV 영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비상'이 걸렸다. 이 상무를 비롯한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은 TV 외장(外裝)에 적용할 새 아이디어를 찾으러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일본·오스트리아·스위스·독일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상무는 독일 뮌헨 부근에서 방문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가슴이 뛰었다. 자동차 선루프(sun roof) 제작과정에 사용하던 이중 사출(두개의 원재료를 동시에 사용해서 만드는 것)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선루프 테두리에 색깔을 입히고 가운데로 갈수록 투명하게 만드는 플라스틱 제조공법을 말한다. 이 기술을 자동차가 아닌 TV 외장에 적용하면 히트작이 나올 듯한 '예감'이 들었다.

2년6개월 동안 혼신의 '열정' 쏟아

본사에서는 곧장 'TOC(Transparent & Opaque Color·투명과 불투명 컬러)'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상무는 "당시 우리 팀은 경쟁사 어느 곳도 따라오지 못할 TV 외장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인생을 걸었다"고 했다. 핵심은 TV 테두리 바깥을 크리스털 같은 느낌을 줘서 투명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붉은색 혹은 파란색이 퍼져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럴 경우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제품처럼 고급스럽고 반질거리는 느낌이 난다.

이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금형(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틀)·사출(녹인 플라스틱을 금형 안에 집어넣어 제품을 생산하는 것) 기계를 설계하고 이를 응용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휴일도, 밤낮도 없었다.

이 상무는 "수원의 국내 협력업체인 세화 공장에서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지를 테스트하다가 기계 옆에서 잠을 잔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해외출장도 자주 나갔다. 삼성 TV 생산은 한국과 중국·슬로바키아·멕시코 공장에서 한다. 이들 공장에서 동시에 크리스털 디자인의 TV를 만들려면 우리 기술진이 생산기계를 점검해야 한다.

이 상무를 비롯해 이종원·황한섭·정현준 수석과 같은 10여명의 연구원은 매년 60일 이상 해외 공장에서 살았다. 2년 6개월간의 개발을 거쳐 작년 3월 삼성의 크리스털 TV가 나왔다. 그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가전 쇼에서 외신들은 시제품으로 나온 삼성 TV를 보고 "TV가 명품(名品)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크리스털 TV 제품은 바로 실적과 연결됐다. 삼성은 2006년부터 전 세계 TV시장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40인치 이상 프리미엄급 LCD TV 부문에서는 여전히 소니(Sony)에 뒤진 2위였다. 크리스털 TV가 나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작년 4월 출시 한달 만에 40인치 이상 대형 TV 북미시장 점유율이 40.8%로 뛰어올랐다. 한달 전은 30.4%였다. 한달 만에 10%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이후 삼성 TV의 독주는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서는 40인치 이상뿐 아니라 대부분의 삼성 TV는 크리스털 디자인을 채용했다.

경쟁사가 모방 못하는 기술

크리스털 TV의 전성시대가 지속되는 이유는 경쟁사에서 모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행대로라면 출시한 지 6개월 이내 경쟁사에서 똑같은 제품을 내놓았어야 했다. 왜 그럴까? "제대로 된 설렁탕 맛을 내려면 수년에 걸쳐 가마솥 옆에 앉아 불을 얼마나 세게 하고 뜸을 얼마 동안 들여야 하는지를 체크해야 합니다. 누군가 크리스털 TV 외장을 만드는 기계를 입수하더라도 이 기계를 움직일 최적의 매뉴얼이 없다면 그 기계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이 상무는 "엔지니어의 열정이 있다면 세계 최첨단 분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털 TV

TV 화면을 감싸는 테두리 부분이 붉은색으로 보이지만 테두리 끝으로 갈수록 투명해진다. 크리스털 제품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바뀐다. TV 외장을 만들면서 투명·불투명 색깔을 동시에 살려 뽑아내는 기술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 크리스털 TV 개발팀이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