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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강팀] [1] 우리가 벤츠·BMW·아우디를 제쳤다

화이트보스 2009. 6. 1. 11:53

[세계최강팀] [1] 우리가 벤츠·BMW·아우디를 제쳤다

 

입력 : 2009.05.11 03:18 / 수정 : 2009.05.12 06:28

현대·기아차 R엔진팀 4년간 독(獨)엔진 나사까지 분석
100여개 부품에 150명 매달려 결과 내놓자 독(獨)업체 "이럴수가"

"24시간 기술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전 세계 2L(리터)급 디젤엔진 중 최고성능을 가진 'R엔진'으로 업계를 놀라게 한 현대·기아차의 김민희 R엔진 설계총괄은 '디젤기술의 본고장인 독일보다 더 뛰어난 엔진이 어떻게 현대·기아차에서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얘기한 '24시간 기술력'이란 무조건 오래 연구실에 남아 있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첨단기술 분야라도 최종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숙련 인력들이 얼마나 많은 반복실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유럽·일본보다 더 좋은 엔진을 만들려면 엔지니어들이 더 많이 실험하고 더 빨리 결과를 반영하는 작업을 수천, 수만번 되풀이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 24시간 기술력입니다."

◆한국 차 엔진 개발의 '혁명'

R엔진은 현대·기아차의 주력 엔진 중 세계 최고에 오른 최초의 '작품'이다. 이달 중순 본격 시판되는 기아차의 SUV '쏘렌토 R'을 시작으로 투싼·싼타페 후속모델에 차례로 장착된다. 특히 디젤차가 인기 높은 유럽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심장' 역할을 맡는다.

R엔진 개발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다양한 크기의 디젤엔진을 갖고 있었지만, 디젤 기술이 업계를 선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휘발유보다 디젤차가 더 많이 팔리는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많은 2L급에서 최고의 엔진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목표로 했던 2008년 말까지 세계최고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엔진 이름은 'R'로 명명됐다. 전제록 R엔진 성능 총괄은 "현대·기아차 디젤 담당자들에게 R은 '혁명(Revolution)'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R엔진 개발팀이 지난 8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엔진 전시실에 모였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준 연구원, 전제록 R엔진 성능총괄, 이은현 시험팀장, 배상수 연구원, 홍현 준 R엔진 프로젝트 매니저, 강용석 연구원, 김민희 R엔진 설계총괄, 곽세영 설계팀장, 정인철 연구원, 강표현 연구원./화성=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독일차 엔진 나사 한 개까지 분석

2005년 초 R엔진 개발팀이 꾸려졌다. 150명의 엔지니어들이 모였다. 개발팀은 당시 벤츠·BMW·아우디의 2L급 디젤차를 구입, 엔진은 물론 관련 부품을 나사 하나까지 뜯어내 성능의 비밀을 연구했다. 이런 작업은 4년간 지속됐다.
개발팀은 이렇게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3년 6개월간 500여대의 시험 엔진을 만들고 이를 400여대의 차량에 장착, 365일 24시간 테스트했다. 엔진의 한계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한여름과 한겨울 전 세계 극한지역에서 혹서·혹한 테스트를 했다. R엔진 개발은 현대·기아차의 상품전략상 반드시 개발일정을 지켜내야 했다. 때문에 모든 일정이 톱니바퀴 물리듯 돌아갔다. 한 팀만 일정을 맞추지 못해도 전체 개발이 지연될 위기의 연속이었다.

출력, 즉 성능만 높아서는 좋은 엔진이라 할 수 없다. 제작 단가도 낮아야 하고 연비가 좋아야 한다. 또 선진국 시장을 뚫으려면 매우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을 통과해야만 했다. R엔진은 모든 면에서 최고여야 했고, 그만큼 엔지니어들의 고생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은현 승용디젤 시험팀장은 "출력·연비를 높이려면 엔진 구동부품의 마찰저항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독일 최고 디젤엔진들의 100여개가 넘는 구동부품의 마찰저항을 빠짐없이 분석해 성능개선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승부의 마지막은 결국 '사람'

디젤의 최고 기술은 독일·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똑같은 것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기술은 한명의 천재 엔지니어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최고의 엔진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정설이다. 최고의 엔진은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최고의 조화를 이뤘을 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70년이 넘는 디젤엔진 역사를 지닌 유럽업체보다 더 나은 엔진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현대·기아차는 20년간 독자엔진 기술을 축적해 왔고 2000여명의 엔진·변속기 전문 연구인력이 밤낮으로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곽세영 승용디젤 설계팀장은 "좋은 엔진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열정이 넘치고 그것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게 우리의 큰 강점이고 R엔진은 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R엔진

최고출력이 2.2L(리터) 200마력, 2L 184마력으로 전 세계 배기량 2~2.2L급 디젤엔진 가운데 출력이 가장 높다. 출력은 엔진의 정밀성·기술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지금까지 2L급 엔진에서 180마력 이상을 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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