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03 03:03
야권은 선거에서 장애물을 걷어냈지만 2011년 가을 이후 우리 정치에 영향을 미쳐온 '안철수 현상'과 안 의원이 해온 말과 약속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에겐 이번 결정에 의아한 점이 적지 않다. 작년 4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현실 정치에 뛰어든 안 의원은 줄곧 '기득권 정치 타파'를 앞세워왔다. 기존 양당제가 증오와 분노를 키우고 민생(民生) 정치를 외면한다면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참여하는 신당을 만들겠다고 말해왔다. 안 의원은 지난 1월 21일 제주에서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함께 묶어 '기득권 세력'이라고 했다.
안 의원은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을 더 비판해왔다. 작년 말에는 광주에서 민주당을 향해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고, 합당 선언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8일에도 광주를 찾아 "광주의 뜨거운 열기로 낡은 정치를 날려달라"고 했다. 안 신당 창당을 총괄해온 윤여준 전 장관도 지난 26일 "피투성이가 되어 (구정치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 측은 민주당과 선거 연대할 가능성을 일관되게 부인하며 17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낼 것이라고도 해왔다. 안 의원은 지난 2월 7일 "정치공학적 연대(連帶)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던 사람이 연대를 넘어 아예 합당을 결정한 것이다.
김 대표와 안 의원은 통합 발표문에서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고 약속의 정치를 정초(定礎)하기 위해" 합당키로 했다고 했다. 기초자치단체 불(不)공천 공약을 번복한 새누리당을 겨냥한 것이다. 공약 번복은 강하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초단체 공천 문제 하나와 안 의원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새 정치' 전체를 맞바꾼다는 것은 잘 납득되지 않는다.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사람도 모이지 않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이 기득권이라고 비난했던 쪽이 내민 손을 잡은 것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안 의원은 민주당 안에서 다음 대통령 선거를 노려보겠다고 방향을 바꾼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구(舊)정치에 대한 새 정치의 백기 투항'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안 의원 측이 신당을 창당하려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랬다 해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정반대로 발길을 바꾸는 것은 낡은 정치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정치를 추구하던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2012년 총선 불과 4개월 전 여러 세력이 모여 창당된 민주통합당이 대선 패배 후 이름만 바꾼 것이다. 야권은 그동안 선거가 끝나면 분열했다가 선거가 임박하면 신당을 급조해 합치는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2000년 이후만 쳐도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민주통합당, 민주당 등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당을 바꿨다. 이번에도 선거 3개월 전에 또 신당을 만들게 된다. 민주당과 안 의원 측은 합당을 선언하면서 "약속을 지키는 새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덧 안 의원 입에서 나오는 '약속'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이 정당이 선거용 급조 정당인지 여부가 드러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