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역사에서 배운다 1374

70년만에야 돌아온 전사자… 살아도 못오는 국군포로

70년만에야 돌아온 전사자… 살아도 못오는 국군포로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0-06-25 03:00수정 2020-06-25 04: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메일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00625/101676532/1 URL복사 URL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닫기 [6·25 70주년 끝나지 않는 비극] 전투기 6대 호위 받으며 공중급유기로 유해 봉환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47위가 70년 만에 머나먼 길을 돌아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8년 북한이 미국으로 보낸 유해 중 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들이다. 23일(현지 시간) 미국 하와이주 히컴공군기지에서 ..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北전장서 산화 국군 유해 147위 귀환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北전장서 산화 국군 유해 147위 귀환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입력 2020.06.25. 03:01 수정 2020.06.25. 04:00 댓글 32개 자동요약 24일 오후 5시 4분경 공군의 공중급유기(KC-330) 1대가 F-15K 등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빗줄기가 흩뿌리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이날 하와이의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에서 인수한 국군 전사자 147위의 유해가 70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후 한미 국방당국은 2019년부터 유해 샘플을 항공편으로 주고받으며 정밀감식을 벌인 끝에 147위의 국군전사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

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유석재 기자 음성으로 읽기 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크기 가 가 가 가 가 글꼴 돋움 맑은고딕 100자평 51 좋아요 246 페이스북 공유30 트위터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구글플러스 공유 네이버블로그 공유 기사 URL공유 공유 더보기 입력 2020.06.24 15:03 | 수정 2020.06.24 19:15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등 전쟁 비극 담은 자료들 300여 장 모은 사진집 '끝나지 않은 전쟁 6.25' 출간 어린 소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릴 것 같다. 전쟁이 끝난 1950년대, 갓난아이를 업은 채 아무 것도 없는 시골 들판에서 울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 단발머리에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6.25전쟁 구국의 3대 전투, 한겨울에 펼쳐진 장진호 전투

6.25전쟁 구국의 3대 전투, 한겨울에 펼쳐진 장진호 전투 6·25 70주년 이야기 / 궁금-터[호국보훈 이야기] 2017. 11. 28. 19:38 http://blog.naver.com/mpvalove/221150715004 번역하기 ​ 1950년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 초기, 국군은 유엔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병력과 장비 면에서 열세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8월 초부터 다부동, 포항 일대에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고자 하였습니다. ​ 그러던 중,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수복하고, 38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주도권을 쟁취한 국군과 유엔군은 곧 통일을 이룩하고 고향에 돌아갈 수 ..

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유석재 기자 음성으로 읽기 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크기 가 가 가 가 가 글꼴 돋움 맑은고딕 100자평 18 좋아요 67 페이스북 공유10 트위터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구글플러스 공유 네이버블로그 공유 기사 URL공유 공유 더보기 입력 2020.06.24 15:03 | 수정 2020.06.24 16:11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등 전쟁 비극 담은 자료들 300여 장 모은 사진집 '끝나지 않은 전쟁 6.25' 출간 어린 소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릴 것 같다. 전쟁이 끝난 1950년대, 갓난아이를 업은 채 아무 것도 없는 시골 들판에서 울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 단발머리에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

대전 진입한 북한 탱크, 백기 든 인민군... 6·25 미공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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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 70년만 고국땅으로

6.25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 70년만 고국땅으로 김승현 기자 음성으로 읽기 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크기 가 가 가 가 가 글꼴 돋움 맑은고딕 100자평 1 좋아요 2 페이스북 공유0 트위터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구글플러스 공유 네이버블로그 공유 기사 URL공유 공유 더보기 입력 2020.06.24 07:19 | 수정 2020.06.24 07:58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진 6·25 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7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23일(현지 시각) 미국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에서 열린 6.25 참전용사 유해 인수식에서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옮겨진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를 국군 유해발굴감식단이 들고 있다. /유엔군 사령..

피흘려가며 한국 지켜낸 덕에 손흥민같은 청년 볼수있게 돼"

피흘려가며 한국 지켜낸 덕에 손흥민같은 청년 볼수있게 돼" 조선일보 양승식 기자 김은중 기자 음성으로 읽기 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 크기 가 가 가 가 가 글꼴 돋움 맑은고딕 100자평 18 좋아요 54 페이스북 공유6 트위터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구글플러스 공유 네이버블로그 공유 기사 URL공유 공유 더보기 입력 2020.06.24 03:00 [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참전국 대사 인터뷰 ②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는 23일 "영국 참전 용사들은 70년 전 6·25 전쟁이라는 악몽 속에 있던 어린 한국 아이들을 봤다"며 "이제 시간이 흘러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이 악몽에서 빠져나왔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스미스 대사는 이..

백악관, 볼턴 책 400여곳 수정 요구…한반도 관련 내용도 다수

백악관, 볼턴 책 400여곳 수정 요구…한반도 관련 내용도 다수 등록 :2020-06-23 07:51 페이스북 1 트위터 0 공유 네이버블로그카카오스토리싸이월드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출판금지 소송서 17쪽짜리 목록 제출 남북에 외교적 악영향 우려한듯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사안 다룬 두 챕터에서만 110개 넘는 수정요구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미국 백악관이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과 관련, 한반도 관련 내용을 포함해 400곳 이상의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볼턴은 재임 기간 겪은 각종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일을 책으로 썼고, 백악관은 국가기밀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기각된 상황이다.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17쪽짜리 서류를..

6월 25일 아침[임용한의 전쟁史]〈

6월 25일 아침[임용한의 전쟁史]〈115〉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0-06-23 03:00수정 2020-06-23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글씨작게글씨크게 공유하기닫기 6·25전쟁 발발 직전, 한국군 병력은 8개 사단, 약 9만5000명이었으며 38선에는 4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북한군은 10개 사단, 17만5000명으로 8만 명 정도가 많았다. 38선의 병력 차는 더 심해서 7개 사단과 전차여단이 배치되어 있었다. 남북한의 전력 차를 말할 때 북한군에는 242대, 한국군에는 단 한 대도 없었던 전차를 예로 들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이 포병 화력이다. 현대전에서 야포의 결정력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포병 화력은 거의 6배 차이가 났다. 당일에는 더 이상한 일들이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