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기행 87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9)=곡성 대환정

곡성의 선비 심계 심채진 선생(1738~1808)을 아는가. 학문이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재야에 머무르며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던 선비가 바로 심계 선생이다. ▲사진(1)= 심계 선생의 가르침은 훗날 곡성 정신을 살찌우게 한 원동력이 됐으며, 그 정신은 오..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8)=곡성 완계정사

근대유학(儒學)의 거두인 분암(憤菴) 안 훈 선생(安 壎·1881~1958). 그의 올곧은 민족정신이 서려있는 곡성 완계정사(浣溪精舍)를 찾았다. 곡성군 오곡면 소재지에서 금계천을 따라가다 덕산마을에 다다르기 직전 왼쪽 천덕산 기슭으로 난 오솔길로 접어돌면 산자락 계곡 속에 완계정사가 모습을 드러낸..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7)=곡성 함허정

곡성지역 정자 가운데 풍광이 가장 빼어나고, 학문적 기품이 스며있는 함허정(涵虛亭)을 찾기위해 여장을 챙겼다. 여장이라 해봤자 카메라와 필름 몇 통이 고작이지만, 잠시라도 회색빛 도시를 탈출(?)한다는 것에 대한 설레임으로 순례자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사진(1)=조선 중기 곡성지역 선비들의..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6)=곡성 영수정

무릇 정자와 누정이 많은 지방의 사람들은 가슴이 따뜻하다. 그만큼 세상살이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그 진솔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오늘처럼 먼지가 풀풀 날리는 날이면 ‘사람다운 사람’이 더욱 간절 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절(義節)의 고장, 곡성’을 찾는 길은 녹음..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5)=구례 방호정

일제 강점기 구례 정신문화 발원 돌을 깎아 정자를 세운 짧은 산자락 서쪽에/ 사계절 풍경이 서로서로 가지런하지 않아/ 발을 거두고 산봉우리 달을 온전히 차지했고/ 베개에 누워 한가로이 두어 곡조/ 시냇물 소리를 들었네/ 노소(老少)가 자리를 같이하니 정의가 합당하고/ 먼곳 가까운곳 선비 가득..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4)=구례 운흥정

충효 근본 詩契 조직 망국의 恨 달래 -하늘에게 명구(名區)를 빌려 건물을 세웠으니/ 붉은 언덕 푸른벽이 저절로 성곽(城郭) 되었네/ 처마를 에워싼 구름은 하늘에 서려있는 기세요/ 창문으로 들어온 파도는 바다물 끊는 소리로세/ 수렁에 가득찬 금서(琴書)는 후손을 가르칠 계산이고/ 하공(河公)이 세..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3)=구례 용호정

망국의 설움 시문으로 달래서 해방 염원 -용호(龍湖)는 거울같이 밝은데/ 그 위에 정자 우뚝 서 있구려/ 복숭화꽃 따뜻한 날씨에 고기떼 뛰고/ 대나무 푸른 숲에 두견새 우는 구나/ 석가모니 문앞에는 구름이 적적하고/ 저 한진(漢陳:중국 지명)땅 침침하니 비 오려나봐/ 방장산 속에 노니는 신선 있으니..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2)=구례 오봉정사

망국의 울분 곱씹으며 동량 교육 매화가 만발한 어느 따사로운 봄 날, 햇살에 반짝이는 섬진강 줄기를 따라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에 맞서 구국의 일념으로 한 평생을 살다간 한 선비의 발자취를 더듬어 구례 오봉정사를 찾았다. 문척면 화정리 오봉산을 끼고 유유히 흐르는 강변 언덕에 섬진강을 굽어..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1)=광양 암연정

사람의 욕심이란 끝간데 없는 법, 특히 요즘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지금은 자취 조차 찾을 길 없는 광양의 암연정(岩淵亭)을 찾는 순례자의 발걸음은 왠지 무겁기만 했다. 현존하지 않은 암연정을 무작정 찾아나선 어느 따스한 봄날 오후. 두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 만개한 매화 꽃잎이 착잡한 순례자..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40)=광양 수월정

조선 선조때 광양인 정 설이 나주목사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건립한 수월정은 송강과 수은이 즐겨찾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가장 낮은 곳에서 있으면서도 빛을 발하는 이가 있다. 광양 출신으로 조선 선조때 나주목사를 지냈던 정 설(鄭渫)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리라. 그는 평생을 청렴결백한 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