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9)=장흥 부춘정 ▲장흥 부춘정 장흥 부춘정(富春亭)을 찾아가는 수요일 오후의 하늘가엔 뭉게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길가엔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며, 정겹게 고개숙인 벼이삭들….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하는 자연의 정경이다. 이 정자는 탐진강의 10리 여울물이 굽이도는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의 깎..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8)=장흥 사인정 아아! 슬프구나. 사람은 가고 정자(亭子)만 남아 바람에 씻기고 비에 젖어 이름모를 잡초만 무성하구나…. 장흥읍과 강진군 군동면의 접경인 국도변 설암산(雪岩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장흥 사인정(舍人亭), 이 정자는 장흥읍 송암리 예양강이 굽어 보이는 우거진 노거수 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7)=함평 백화정 ▲함평 백화정 먼지 푸석푸석 날리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성인들은 무엇 때문에 앓고 있을까. 국가와 사회, 개인에게 변화를 크게 요구하는 이 시대야말로 부패의 원인과 결과가 뚜렷하게 드러나 한 차례 굿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조선말 큰 선비..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6)=함평 이인정 ▲함평 이인정 강산이 아름답기 남쪽에서 으뜸이리/ 삼라만상 그 경치를 어찌 다 거두우리/ 수양버들 잎은 지고 성긴가지 나부껴도/ 늦게 핀 연꽃이 바람일어 향기 그윽 풍겨오네/ 좋은 모임 오래오래 노소가 함께하니/ 잔을 들며 서로 즐겨 몇 세월이 지났는고. <안여기의 시> 함평군 나산면 나산..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5)=함평 영파정 함평읍 기각리 구기산 밑으로 영수천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녹음이 하늘 가득 우거진 초여름 수요일 오후, 500여년 인고의 세월을 영수천과 함께 보냈을 정자 한 채가 말없이 길손을 맞았다. 흐드러진 망초며 이름모를 잡풀들이 주변을 무성하게 애워 쌓인 채…. 영파정(潁波亭), 이 정자는 함평 출..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4)=함평 육모정 ▲함평 육모정 함평읍 저잣거리로 나가 길가던이 아무나 멈춰세워 ‘함평 이 진사댁이 어디냐’고 물어보라. 더불어 이 진사댁 뜰안에 있었던‘육모정’까지…. ‘이 진사댁과 육모정, 그리고 백범 김 구’는 뗄래야 뗄 수 없음을 쉽게 알수 있으리라. ▲사진(1)=1898년 3월19일 백범 김 구 선생이 인천..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3)=보성 죽곡정사 ▲보성 죽곡정사 1895년 단발령을 거부하며 선비의 기개를 세운 보성의 도학자 회봉 안규용(晦峰 安圭容·1873~1959)의 정신이 밴 죽곡정사(竹谷精舍)를 찾았다. 보성에서 북쪽으로 40리 떨어진 곳에 우뚝하게 솟은 조천봉(朝天峰)이 있다. 그 봉우리 아래 깊숙이 자리잡은 곳이 죽곡(竹谷)이라 하는데, 이..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6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2)=보성 천인정 세상은 온통 눈(雪)빛이었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삐비꽃이 비봉산을 넘는 석양에 반사돼 수요일 오후를 하얗게 채색하고 있었다. 만개한 삐비꽃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천인정을 오르는 길은 마치 남농 허 건 화백의‘노송도(老松圖)’를 연상케 하는 10여 그루의 늙은 소나무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4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1)=보성 죽천정 ▲보성 죽천정 외롭게 앉혀진 정자 한 채, 그 밑으로 촬영장 세트처럼 놓여진 간이역, 그리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두 어평의 남짓한 시골 다방…. 마치 영화속의 정겨운 한 컷의 씬을 연상케 하는 60~70년대 풍이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보성군 노동면, 면 소재지를 지나 광곡리 화전봉(花田峯) 기슭에서 ..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4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50)=보성 열화정 ▲열화정 보성‘득량(得粮)’…. 이름만 들어도 뭔가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않은가. 그러니까, ‘득량’이란 이름은 이렇게 연유됐다. 1592년 임란 당시 비봉리 선소 마을 앞 섬(지금의 득량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 하고 있었다. 이때 아군의 식량이 떨어져 비봉리 선소에서 식량을 조달.. 풍수기행/광주정신 찾는 정자기행 2009.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