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기행 87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70)=고하도 이충무공 삼문

목포 앞바다에 반쯤 잠긴 용(龍)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섬 고하도(高下島), 금방이라도 용이 살아움직여 승천할것만 같은 형상을 한 이 섬은, 행정구역상 목포시 달동 산 230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정이 스며있는 곳이다. ▲사진(1)=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정이 ..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9)=무안 감리서(務安監理署)

▲사진(1)=1899년 외국 영사관에 맞서 조선인의 권익보호를 대변했던 무안감리서. ▲사진(2)=현재 무안감리서는 흔적 조차 찾을 길 없고 감나무만이 외롭게 서서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주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서설(瑞雪)이 펑펑 내리고 있다. 올해는 무엇보다 ‘전라도 정신’이 살아 꿈틀거릴 것 같은..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8)=木浦詩社(목포시사)

누가 목포를 ‘눈물의 고향’이라 했던가. ‘목포의 눈물’은 그 어느 도시의 것 보다도 아름답다. 목포가 한국 문화예술의 산실로 자리하게 된 것은 아름답도록 빛나는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금방이라도 짙푸른 파도에 씻겨내려 갈 것만 같은 한반도 남쪽 끝 유달 묏뿌리. 그 기슭에 외롭게..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7)=해남 해촌사

▲사진(1)=척박한 해남의 정신문화를 옥토로 일궈냈던 ‘海南 6賢’이 모셔져 있는 해촌사(海村祠) 전경. ▲사진(2)=‘해남 6현’해남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선비들에게 까지 영향을 끼쳐 중요한 호남문화 인물로 자리매김 됐다. 우뚝 솟은 출입문은 300여년전 선비들의 기품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은..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5)=해남 녹우당

해남 덕음산을 뒤로하고 그 줄기인 성매산, 옥녀봉, 호산을 잇고 들어서 있는 해남군 해남읍 연동, 이곳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실학사상을 묻고있는 녹우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터는 고산의 5대조인 어초은이 터를 잡았으며 현재 고산의 14대손인 종손 윤형식씨가 살고 있다. 이곳은 ‘지명총람’..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4)=완도 보길도 세연정

▲사진(1)=고산 윤선도가 한국 가단의 백미로 꼽히는‘어부사시사’를 지었던 완도 보길도 세연정. ▲사진(2)=격자봉 밑에 자리한 세연지(洗然池)는 세연정과 함께 고산의 자연주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완도 보길도 세연정 길가에 흐드러진 코스모스 향내를 가르며 광주에서 얼마나 달렸..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3)=진도 압구정

▲진도 압구정 누가 진도를‘유배의 땅’이라 했는가. 고려 말 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진도는 반골 정신의 텃밭이었다. 하여, 진도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통틀어 근·현대사에 상당한 역할을 차지해 오고 있음은 바로 그러한 연유이리라. ▲사진(1)=고려 말 두문동(杜門洞) 72현 가운데 한 사람..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2)=진도 벽파정

▲사진(1)=고려조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진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벽파진과 벽파정, 현재 벽파정은 흔적 조차 찾을 길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신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문헌에 따르면 정자는 현 벽파 파출소 뒷편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진(2)=벽파진에서 내려다 본 진도 앞바다의 푸른..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1)=장흥 용호정

▲사진(1)=240여년 전 낭주최씨 일가의 효사상(孝思想)이 오롯히 배어있는 장흥 용호정은 가족주의가 파멸돼가는 오늘날 우리의 가슴을 후끈히 달구고 있다. ▲사진(2)=탐진강 굽이돌아 벼랑 끝에 서 있는 용호정, 여름이면 많은 청소년들이 이 정자를 찾아 효사상의 교훈을 배우고 있다 -한 정자를 물가..

호남정신의 뿌리찾는 정자기행(60)=장흥 경호정

하늘이 만들어 놓은 좋은 터에 한 정자 높이 섰으니 사람의 그림자 아른아른 거울 속에 흐르네/ 어린새끼 송아지 저 언덕에서 바람받고 울고 백구(白鷗)는 달을 따라 진 물가로 내리네/ 문장(文章)이 가신지는 이미 여러 성상(星霜)이 지났지만 풀과 나무에는 지금(只今)도 정채(精采)가 머물러 있네/ 오..